구급함세트

―시우는 화자에게 ‘공동체, 이웃, 연대 같은 말들을 다 믿느냐’고 묻고, 화자가 답을 망설이는데.

“답이라기보다 질문을 공유하는 식으로 이 단편을 썼다. 어느 순간 그 질문 앞에서 주저하게 된 많은 이의 곤경을 그리고 싶었다. 어떤 질문들은 너무 커서 여럿이 나눠 들어야 하니까.”

―전작 ‘바깥은 여름(2017)’에 비해, 이번 책은 상실 이후 삶의 어두운 그늘로부터 멀어져 ‘어른 구실’을 하려 애쓰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읽혔다. 이번 책을 쓰고 엮으며 ‘희망’이나 ‘낙관’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었나.

“‘낙관도 비관도 확실성의 한 형태’라는 리베카 솔닛의 글에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그게 더러 우리의 행동을 어렵게 만든다는 말에도. 그럼에도 ‘어른’이란 비관적인 전망을 가지려는 순간 한 번 더 주저하는 존재다. 다음 세대의 내일을 위해서라도. 마찬가지로 과거 ‘입동’을 쓸 때 아이를 잃고 고립된 부부를 그렸다. 하지만 이번 책에서는 똑같이 도배 장면이 나오되 유족을 위로하는 외부인을 한 명 넣고 싶었다. 그래서 ‘입동’은 유족의 독백으로 끝나지만 ‘빗방울처럼’은 망자의 당부로 끝난다. 부디 살라는, 살아 달라는 부탁으로.”

달항아리는 하나의 도자기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정신성과 미감을 응축한 하나의 상징이자, 시간 속에서 빚어진 문화의 형상이다.

책 '희고 둥근 빛'은 이 상징을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불러내려는 사진작가 윤주동의 집념과 사유를 고스란히 담아낸 기록이다.

18세기 조선의 백자 달항아리는 더 이상 과거의 골동품이 아니다. 경매 시장에서 수십억 원에 거래되며, 전통과 예술, 국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기능하고 있다. 윤주동은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단순한 복원이나 모방을 넘어 현대적인 조형성과 감각을 입히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그는 "변형되기 전에 원형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단지 도자기 기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전통을 어떻게 이어가고, 어떻게 지금의 언어로 다시 말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책은 Korean Art Archive 1923(KAA1923) 시리즈의 세 번째 권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기록과 아카이빙을 지향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윤주동은 달항아리의 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전국의 광산과 가마터를 직접 찾아다니고, 조선왕조실록과 박물관 강의를 탐독하며 기술과 안목을 축적했다. 그 결과로 탄생한 달항아리는 과거의 원형성과 오늘의 미감이 공존하는 ‘살아 있는 백자’다.

특히 흥미로운 비유는 작가의 언어에서 등장한다. 그는 미국식 영어와 영국식 영어의 차이를 예로 들며, “원형을 가진 언어가 시대 변화에 더 유연하다”고 말한다.

달항아리도 마찬가지다. 복원이란 과거를 현재로 되살리는 일이 아니라, 미래의 변형을 위한 토대를 다지는 일이다.

'희고 둥근 빛' 이 책은 단순한 도자 작품집이 아니다. 백자의 재현과 변형, 전통과 현대, 손끝의 감각과 역사적 문맥이 맞물린 예술적 통찰이자, 장인정신과 미학적 실천의 일지다.

―양극화, 영끌, 벼락거지, 전세사기 등 최근 한국 사회 키워드가 소설 전반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마찬가지로 최근 주목하는 현상이 있다면.

“이토록 황폐해진 우리에게 슬며시 다가와 따뜻한 손을 건네는 인공지능(AI) 프로그램. 때론 상담사로 어느 click here 때는 친구이자 연인의 얼굴로 인간을 달래주는 AI의 언어와 패턴, 구조, 섬찟함, 가능성 등에 관심이 간다. 이미 많은 작가가 그린 근미래 풍경이나 요즘 이걸 현실로 마주할 때 아득함이 있다.”

―등단 24년차 중견작가가 됐다. 스스로 느끼는 변화가 있다면.

“나이를 먹어가며 천천히 ‘원경이 확보되어 간다’는 실감이 든다. 그게 소설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방’이나 ‘집’을 그린 내 이야기가 작게 느껴진 적도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마음이 덜하다. 같은 이야기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점묘화로 그린 하늘처럼 점점 커질지 모르니까.”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고 싶은가.

“작업할 때 구체적으로 큰 계획을 세우며 움직이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희미한 충동이나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때가 많고. 그 과정에서 ‘작가로서 뭔가 꼭 잘해보고 싶다’는 바람보다는 반대로 뭐가 잘 안 됐을 때, 실패의 크기가 몹시 클 때조차도 스스로 너무 좌절하지 말고 다시 책상 앞에 앉을 용기가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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